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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헤어질 결심’이 사랑이란 워딩을 빼고 사랑을 말한 방법

by REDCOPY 202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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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은 온몸으로 사랑했다, 사랑이란 말만 빼고

안녕하세요. 레드카피입니다. 헤어질 결심을 좀 늦게 보았습니다. 이미 극찬과 호평을 받은 영화이고 섬세한 감정 표현이 돋보인다는 평을 익히 아는지라 좀 망설여졌습니다. 그 세심한 감정선에 슬퍼질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긴 망설임 끝에 드디어 봤습니다. 복선과 의미를 곳곳에 배치하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연출력 역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문가의 시선이 아닌 한 사람의 여자 관객으로서 해준과 서래의 감정을 리뷰해보려 합니다.

헤어질 결심

 

미결 사건이 되어 해준의 가슴에 박힌 서래

경찰인 해준은 기도수를 죽인 용의자 서래를 만납니다. 그리고 서서히 서래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서래를 감시하는 것이 마치 해준이 원해서 서래를 지켜보는 것처럼 어느 순간 보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서 일을 하고 언제 잠드는지 모든 것을 녹음하고 기록합니다. 서래는 알고 있습니다. 해준이 자신을 지켜보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이 밤에 누구의 집을 들여다 보는지 당신의 아내는 아나요?"
당황한 해준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대답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서래에게 알려주는 셈입니다. 그리고 서래가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고 사건이 자살로 종결되면서 해준은 안심합니다. 하지만 그 안심도 잠시. 해준은 서래가 기도수를 살인한 증거를 찾아내고야 맙니다.

 

헤어질 결심

 

해준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서래의 사랑

해준은 서래를 떠납니다. 그리고 그 떄 나오는 해준의 대사는 영화를 관통하는 사건의 시작이 됩니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해준은 서래가 기도수를 살해한 건 알지만 사건을 재수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깊이 묻어버립니다. 이 행동으로 서래의 마음에는 해준이 박힙니다. 해준의 행동은 서래를 지켜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서래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올 때부터 줄곧 긴장 상태인 여자입니다. 자신을 지킬 건 자기밖에 없고 믿을 것도 자기 밖에 없습니다. 거실에는 펜타닐이라는 독약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를 해준이, 어찌됐건 결과적으로는 지켜준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해준은 서래를 위해 요리를 해줬고, 담뱃재를 대신 떨어주었고, 우산을 씌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용의자로 수사받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떠났죠. 해준은 자신이 지녀온 경찰의 자부심과 자부심으로 살아온 모든 것들을 붕괴되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해준이 떠난 자리에서 서래의 사랑은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난 붕괴됐어요."
만약 해준이 이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서래는 해준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까요? 해준도 해준이지만 해준을 찾는 서래의 마음과 해준을 찾으면 안되는 현실 사이에서 서래는 더 길을 잃고 헤맨 것 같습니다. 재회해서 해준이 묻는 말에 대한 서래의 대답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니 왜 그런 남자랑 결혼 했습니까?"
"다른 남자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습니다."

 

헤어질 결심

 

그 사람의 컨디션이 어떻든 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서래의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해준이 쫒던 범인이 죽도록 사랑했던 여자를 찾아갔을 거라고 서래가 추측하면서 하는 대사입니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애잔한 사랑의 말로도 들리지만 굉장히 위험한 말이기도 합니다. 임자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자칫 잘못된 행동으로 표출될 수도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이 말은 굉장히 복잡 미묘하면서 보는 사람의 애간장을 태웁니다. 잡아당기면 안 되는 팽팽한 실을 자꾸만 땡기는 느낌이 듭니다. 끊어질 텐데 안되는데 하면서도 계속 잡아당기길 바라는, 그런 느낌입니다. 해준과 헤어진 후 400여 일 만에 또다시 남편 살해 용의자가 되어 해준 앞에 선 서래. 그녀는 해준에게 죽은 자기 엄마와 할아버지의 유골을 맡깁니다. 뿌려달라고요. 눈이 오는 호미산은 동화 같습니다. 조금 잔인한 동화처럼 보였달까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붑니다. 실제로 산을 내려온 해준은 아내 정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긴 눈 안 왔어?"
좋아하기를 중단하지 않는 건 그냥 꿈같은 일이라고 표현된 것 같기도 합니다.

 

헤어질 결심

 

자신의 말한 사랑을 뒤늦게 알아버린 남자

자신의 결말에 대한 서래의 선택이, 만약 해준이 다른 대답을 했다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로 다른 차 안에서 전화로 대화하는 둘의 말입니다.
"...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헀어요?"
서래도 알고 보는 사람도 알고 있습니다. 해준은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했다는 걸 말입니다. 다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을 뿐이죠. 그의 말은 이랬습니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서래를 지키고 위하고 살렸던 말.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이 대사는 세 번 반복됩니다. 이 대사 때문에라도 영화를 다시 리와인드해서 보게 됩니다. 그들의 감정과 말들은 미결 사건이 된 채 바닷속 깊은 곳에 묻히게 됩니다. 아니, 해준의 마음은 아직 어딘가를 헤매게 될까요?

 

헤어질 결심


몇 년 전에 지인이 이런 의문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애인이 내 친구와 계속 나란히 걸어. 손도 안 잡고 잔 것도 아니고 그냥 나란히 걷기만 해. 그러면 용서가 될까?"
해준의 아내도 서래의 남편도 그들을 사랑한다고 하고 살을 부비지만 정작 더 진하고 독한 사랑은 그들 사이가 아닌 해준과 서래 사이에 남았습니다. 남녀의 사랑은, 오히려 사랑이란 말속에서 퇴색되는 건 아닐까요? 내 눈이 어디를 향하는지 그 사람의 눈이 나의 무엇을 지켜보고 있는지 그 눈빛 속에 담긴 것은 어떤 감정인지. 더욱 세심하고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헤어질 결심'이었습니다.

다음 리뷰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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