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10년 다니다 그만두면
원금도 못 뽑는 건데
역시 성공하려면 미혼이 답인가
안녕하세요. 레드카피입니다. 드라마 대행사에 뒤늦게 푹 빠져있습니다. 제가 주로 넷플릭스 기반으로 컨텐츠들을 접하기 때문이긴 합니다.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과장도 있지만 광고대행사의 생리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대행사 등장인물 중 10년차 카피라이터인 은정 카피에게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딱 그 상황이었거든요. 아이를 두고 회사에 출근할, 아니 대행사에 출근할 자신이 없어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딱 10년 차인 카피라이터였습니다. 저는 일찌감치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아이 쪽으로 돌아섰지만 은정 카피는 지금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워킹맘까지 죽어야 사는 대행사의 현실
드라마를 보면 은정 카피의 아들 아지가 "아지 엄마 아니야, 광고 엄마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대행사 드라마를 보시면서 저렇게 날밤을 샌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듯 합니다. 네. 저렇게 실제로 날밤을 샙니다. PT 때는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잠깐 씻고 오겠습니다." 이겁니다. 그런 PT가 비일비재한 대행사에서 워킹맘으로 살아남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고 말입니다. 단순히 야근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말 약속도 제대로 잡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 말입니다. 본인이 워킹맘으로 사는 게 아니고 본인 안의 워킹맘까지 죽여야 대행사에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 심해집니다.
드라마에서 제작본부장인 고아인(이보영)이 직원들에게 이 말을 자주 합니다. "됐으니까 나한테 보내고 퇴근들 해." 이게 CD, 제작본부장의 역할입니다. 정리는 최종 보스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집에 못 간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드라마 중 고아인의 캐릭터 설정이 일에 미쳐 결혼 생각 따위는 없는 인물입니다. 일에 미친 캐릭터를 극대화하기 위해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집어넣은 듯하고 말입니다.
10년 다니다 그만두면 원금도 못 뽑는
10년차로 그만두면 원금도 못 뽑는다는 저 말, 맞습니다. 광고대행사에서 10년 차가 참 애매한 연차입니다. CD를 달기에는 너무 어리고(드라마 대행사에서 은정 카피가 10년 차로 CD 승진을 한 케이스인데 현실에서는 없다고 보면 됩니다.) 프리랜서 카피를 하기에도 경력이 약간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아예 어린 연차도 아니고 말입니다. 포기하기에는 아깝고 세상으로 나가자니 막막한, 그런 연차가 10년 차입니다. 정말 회사 그만두기 아까운 연차 10년 차. 그런 때에 은정 카피가 사직서를 선택한 건 정말 대단한 용기입니다. 단순히 회사 그만둔다가 아니고 지금까지의 내 커리어 안녕 이걸 각오한 일이니까요. 광고쟁이들은 대부분 광고에 미쳐있습니다. 광고가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말입니다.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종의 마약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희열까지 다 버린 은정 카피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미혼이거나 미혼처럼 살거나 아이가 없거나
물론 광고대행사 한정입니다. 미혼이거나 미혼처럼 살거나해야 성공이란 형태 가까이에 갈 수 있습니다. 아 또 있습니다. 아이가 없거나 이것도 포함입니다.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생기면 광고는 하기 힘듭니다. 24시간 일 생각만 하게 만드는 참 이상한 일이거든요. 부모는 자기의 시간을 쪼개고 양보해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뭘 이렇게 진지하고 무섭게 말하나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아직도 가끔 생각합니다.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에서 전화가 올 때, 갑자기 아이가 다쳐서 유치원에 못 갈 때, 친구들처럼 나도 캠핑 가고 싶다고 말할 때, 만약 내가 아직 대행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입니다. 발을 동동 굴렀을 겁니다. 어쩌면 은정 카피네처럼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이비시터가 상주해 있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의 차선이 될 수 있을지는 글쎄요.
어쨌거나 드라마는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카지노의 결말이 재벌집 수준이라는데, 대행사의 결말은 어떨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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