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레드카피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포스팅이라 부끄럽네요. 너무 바빴습니다. 그 사이에 드라마 악귀는 결말을 지었네요. 마지막 12화까지 다 보고나니 완전히 느껴졌습니다. 김은희 작가는 역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구나 하는 걸 말이죠. 악귀, 라는 귀신은 표면적인 것이고 결국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귀신을 만들다
악귀의 모든 시작은 사람의 욕심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부와 재물을 얻기 위해 어린 아이를 희생양 삼아 태자귀라는 귀신을 만듭니다. 사람이 참 잔인하죠. 어떻게 사람을, 아니 어린 여자아이를 아사 직전까지 몰고가서 잔인하게 살해할 생각을 했을까요. 원한에 가득찬 태자귀를 만들어낸다는 발상 자체가 인간의 이성을 벗어났다고 봅니다. 그것도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 말이죠.
구산영(김태리)은 모든 진실 앞에서 오열합니다. 오열하는 구산영과 염해상 교수(오정세)를 보면서 시청자도 함께 분노하죠. 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곧 알게 됩니다. 이 분노가 낯선 감정이 아니라는 걸 말이죠. 이 분노는 바로 우리가 현실에서 늘 느껴왔던 그 감정. 강자가 약자를 파괴하고 부를 독식하는 그 꼬락서니를 볼 때, 또 당했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이란 걸 말입니다.
... 보다 지독한 현실
생각해보면 '부자가 되기 위해 아이를 살해해서 귀신을 만든다'는 요즘 현대의 어떤 형태로도 치환될 수 있을 듯 합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타인의 것을 빼앗는다'
'부자가 되기 위해 타인에게 속임수를 쓴다'
'부자가 되기 위해 타인의 아픔을 외면한다'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보이스피싱범이나 태자귀를 만든 무당이나 똑같은 것이죠. 김은희 작가가 말하려 했던 포인트도 여기에 있습니다. 굳이 악귀가 아니더라도 악귀보다 더한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구산영은 악귀를 만나기 전에도 지독하게 힘든 인생이었습니다. 엄마가 사고친 거 수습하느라 가난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구산영은 주변인들 위해 사느라 정작 본인을 위해 살지 못했습니다. 아등바등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처지였죠.
12화에서 구산영이 악귀에게 말하죠. 나를 죽이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고. 그걸 깨닫고 나니 죽을 수 없었다고 말입니다. 1화에서 구산영은 한강에 몸을 던져 죽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었습니다. 하지만 12화에서 살아야겠다고 말합니다. 곧 눈이 안 보이게 될지언정 살아야겠다고 말입니다.
사실 마지막 시퀀스는 김은희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선물일 겁니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지독하죠. 드라마의 결말 같은 희망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죽하면 실낱같은 희망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를 봅니다. 그 실낱같은 희망을 보고 싶어서요.
악귀보다 악귀같은, 사람
나병희(김해숙)의 마지막은 정말 참혹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욕심 아래 짓밟힌 꼴이지요. 태자귀를 무당에게 의뢰한 본인이 악귀에게 살해당했으니 말입니다. 전 마지막 나병희의 발악이 더 끔찍스러웠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나 혼자 죽을 수 없어' 였습니다. 그 끔찍스러움이 염해상 교수에게는 악귀를 없앨 힌트가 되긴 했지만 나병희의 모습은 추악한 인간의 끝 그 자체였어요. 문득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나병희 본인은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괴물같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요? 돈을 손에 쥔 채 그런 추악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만족했을까요?
나병희의 죽음 앞에서 염해상 교수는 분노와 안타까움, 슬픔이 한데 뒤섞인 감정을 토해냅니다.
"적어도 한 마디는 남겼어야죠. 나한테. 미안하다고. 일을 이렇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나병희는 그런 마음따위 한톨도 없었을 겁니다.
구산영이 실제로 눈이 멀어가고 있었다면 나병희는 마음의 눈이 이미 실명된 듯 합니다. 모든 것이 욕심에 가려져 있었으니까요. 악귀보다 더 악귀같은 사람. 현실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의 결말
악귀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대놓고 악행을 저지르는 나병희 같은 사람도 있고, 그 악행을 묵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파헤치는 사람도 있고, 사건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도 있죠. 귀신이 없어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잔인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김은희 작가는 그걸 말하고 싶었던 듯 합니다. 악귀는 그 잔인한 사건, 인물을 이미지화 한 캐릭터인 거죠. 드라마 악귀를 보면서 김은희 작가는 사건의 설계를 정말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물간의 개연성과 사건간의 개연성이 탄탄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보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어요.
앞서 말했듯이 드라마의 결말은 김은희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선물일 겁니다. 우리가 드라마를, 이야기를 보는 이유는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그래도 저 이야기처럼 희망이 있을 거야 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이니까요.
김은희 작가의 다음 작품도 너무 기대가 됩니다. 드라마 악귀 엔딩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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