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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 영화가 끝난 후 내 삶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by REDCOPY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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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레드카피입니다. 이번에는 원작이 어마어마한 영화입니다. 뉴욕타임즈 181주 연속 1위라는 놀라운 기록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입니다. 원작 소설을 먼저 볼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영화를 본 다음에 소설을 보는 게 개인적 취향에는 맞는 순서라 영화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마음에 카타르시스가 어마어마하게 올라오는 영화였습니다. 주인공인 카야를 중심으로 리뷰하겠습니다. 결말 스포 전부 다 있습니다.

 

where the crawdads sing

 

외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카야의 장소, 습지

카야는 버려진 아이입니다. 엄마도, 형제도, 아빠도 모두 떠난 그 자리에서 어린 카야는 홀로 십수 년을 살아냅니다. 아빠는 어린 소녀를 휘두르는 존재였습니다. 엄마와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아이를 방치하다가 자신마저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빠라는 존재가 사라진 후 카야는 진정 혼자가 됩니다. 그러나 마을로 가면 끊임없이 누군가가 카야에게 다가옵니다. 땅을 사려는 개발자들이 기웃거리고 마을 사람들은 수상한 습지소녀라며 수군댑니다. 그런 카야에게 습지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둥지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어쩌면 카야가 습지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겁니다. 습지에서 카야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냅니다. 타인의 시선에 관계없이 아주 기특하게 말입니다. 

나는 왜 어미가 자식을 떠나는 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런 카야에게 한 남자가 다가옵니다. 테이트입니다.

 

where the crawdads sing

 

타인에게 걸었던 희망에 베인 상처

테이트는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 줍니다. 함께 책을 읽고 습지를 탐구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테이트는 카야를 습지에 남겨둔 채 떠나갑니다. 영화 후반부 즈음에 이유가 나옵니다. 카야가 세상과 섞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테이트의 변명을 통해 말입니다. 하지만 카야에게는 너무도 큰 상처였습니다. 무려 5년 간 빠져나오지 못한 상처말입니다. 카야는 버림받은 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지만 배신당했습니다. 그 충격과 상처는 보통 사람의 몇 배나 되었을 겁니다. 그 아픔의 기간 동안 그녀에게 위로가 된 것은 또 습지였습니다. 오직 그곳에 있고 변하지 않는 습지. 영화 내내 카야는 계속 관찰하고 그립니다. 습지의 변화와 새로운 생물들, 그들의 이름과 모습을 기록하고 그립니다. 나중에 그 기록들은 카야의 생활에 버팀목이 되고 그녀의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카야가 간신히 아픔을 잊으려 할 때 또 다른 외부인이 그녀의 세계를 침범합니다. 이번엔 체이스입니다. 

 

where the crawdads sing

 

카야를 휘두르지 않았던, 카야를 응원했던 사람들

마치 스토커처럼 카야에게 매달렸던 체이스가 사체로 발견되자 모든 용의점은 카야에게 몰립니다. 25년의 소문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들은 바 있는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합니다. 습지의 마녀가 체이스를 죽였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카야의 편은 있습니다. 변호사를 자처한 톰 밀턴,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그녀를 도와주던 점핑 부부입니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그녀를 진정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켜봐주고 그녀가 위험할 때 손을 내밀어줍니다. 그것은 카야를 한 번 떠났던 테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자신을 다시 받아줄 때까지 뒤에서 기다립니다.

체이스는 그들과 반대되는 인물입니다. 계속 그녀의 습지를 침범하고 그녀의 물건들을 흐트러 뜨립니다. 체이스가 처음 카야의 집에 들어갔을 때 체이스는 그녀의 그림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단 한 장면이지만 그 장면만으로 체이스와 카야의 관계를 모두 보여주는 듯합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까지 말입니다. 

법정에 살인용이자로 선 카야는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 덕분에, 그리고 그 자리에 묵묵히 있는 습지 덕분에 버티고 또 걸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갇혀 있던 시간동안 습지에 돌아가고 싶던 열망과
탐구해야 할 것들 발견하지 못한 생물들이
아직 많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는 것을
또한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 덕분이었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을
내가 진정 사랑한 단 한 사람과 나누리라는 희망

 

where the crawdads sing

 

그럼에도 카야의 삶을 지킨 것은, 바로 카야 본인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체이스를 살해한 범인이 테이트라고 생각했습니다. 카야를 위해 그 못된 양아치를 죽였다고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 범인이 밝혀집니다. 범인은 카야 본인이었습니다. 카야가 죽은 뒤 일기에서 테이트가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끔 먹잇감이 살아남으려면
포식자는 죽어야 한다

 

체이스는 카야를 잡아 먹으려 하는 포식자였습니다. 자신의 힘만 믿고 광기를 부리는 포식자 말입니다. 카야는 포식자를 죽여서 스스로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누가 카야를 욕할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습지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습지를 자신의 땅으로 만들었고 죽어서도 마침내 습지로 돌아갔습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포식자를 없앤 그녀를 욕할 수 있는 건 누구도 없을 겁니다. 사마귀 암컷이 수컷의 머리를 먹는다고 사마귀 암컷을 욕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카야는 테이트와 함께 호호백발이 될 때까지 스스로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where the crawdads sing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고등학생들이 이 영화를, 원작 소설을 봤으면 합니다. 누군가 이렇게 해야한다고 말하니까, 또는 누군가 떠미니까 하는 공부나 일상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합니다. 카야는 혼자였지만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목표인 집에 최선을 다했고 또 그 집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삶을 살까를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야는 숨이 끊어지기 전 엄마의 얼굴을 봅니다. 평생을 그리워한 엄마의 곁으로 돌아간 카야가 다시 한번 행복하길 바랍니다. 영화의 카타르시스가 커서 한동안 계속 떠오를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늘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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