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밀도 높게 짜인 그물 같은 드라마
평소에도 강풀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조명가게를 기점으로 작가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아졌어요. 무빙 때도 천천히 빌드업하면서 중반까지 끌어가는 능력이 대단했지만 이번 조명가게도 그렇더군요. 초반에서 뭐야 뭐야 궁금해 왜 이래 하는 것들을 밀도 높은 개연성과 빈틈없는 인과관계로 조각모음 하는데 감동했달까요?
타당한 초기설정을 잃지 않은 전개
조명가게는 죽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와 죽은 사람들의 세계, 그 경계에 놓인 코마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조명가게에 있는 전구들은 죽어가는 사람, 즉 코마 환자들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설정은 심플합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은 계속 사후세계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고 죽음과 삶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은 본인의 의지로 조명가게에서 자신의 전구를 찾아야만 원래 있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조명가게 작가의 설계에 정말 감탄한 건 이 설정을 끝까지 잘 연결했다는 거에요. 처음에 저 조명가게가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해하던 시청자들은 결말에 이르면서 제발 빨리 저 전구를 잡아!! 이렇게 속으로 외치게 되죠. 귀신과 경계인 등 복잡한 캐릭터들을 엮는 과정에서 이렇게 핵심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참 대단합니다.
단 하나의 캐릭터도 버려지지 않았다
조명가게에는 캐릭터가 많이 나옵니다. 버스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이 있고 다른 사고로 들어온 환자도 있고 그 환자들의 가족도 있어요. 물론 간호사도 있고요. 거기에 조명가게 사장님도 있네요. 주지훈 배우가 맡은 조명가게 사장님은 전체 8화에 이를 때까지 가게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조명가게 드라마 통틀어서 주지훈이 선글라스 벗고 얼굴 보여주는 장면이 4번은 될까요?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바쳐 살렸던 딸을 다시 만남으로써 퍼즐은 완성됩니다.
이렇듯 많은 캐릭터들이 끈끈하게 연관성을 갖고 꾸준히 서로를 향해 달려갑니다. 어느 한 캐릭터도 튀지 않아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집중하는 강풀 작가여서 그런지 모든 사연, 사건을 버리지 않고 감동으로 끌립니다.
딸을 위해 조명가게를 지키는 부성애
원영(주지훈)은 건물 붕괴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딸을 살리기 위해 그 당시 조명가게 사장과 딜을 치죠. 그렇게 살아난 딸 유희(이정은)는 세상을 살다 버스 사고로 죽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딸을 살리기 위해 조명가게에서 전구를 달라고 울부짖어요. 그 장면에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수십년을 조명가게에서 딸을 기다렸을 아빠의 마음과 자신보다 먼저 죽은 아빠를 마음에 묻었을 딸의 재회. 그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저로선 눈물이란 단어밖에 없네요.
죽어서도 사과를 하는 버스기사
살아서도 하기 힘든 사과를 버스기사는 죽어서도 사후세계를 돌아다니며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심 반성했어요.
얄팍했던 사랑의 민낯을 드러낸 커플
죽음도 불사한 여자쪽과는 달리 버스 사고를 당하자마자 자신의 연인을 잊어버린 남자. 사랑을 하긴 한 건지 모르겠다는 지영(김설현)의 말이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남자(엄태구)는 이미 기억도 잃고 마음도 잃고 대답할 수 없으니까요. 죽은 사람은 사후세계에서 살아야 하지만 지영은 울분에 찾는지 귀신의 모습으로 옛 연인 앞에 나타납니다. 아마 많은 날을 따라다니며 괴롭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풀 유니버스는 무빙2로 이어진다
엔딩 크래딧 후에 나오는 쿠키 영상을 보면 무빙2에 등장할 거라 추측되는 영탁이 등장합니다. 죽은 자를 사후세계로 보내는 역할을 맡게 된 형사(배성우)와 만나는데요. 이렇게 자신만의 세계관을 탄탄하게 엮어가는 강풀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조명가게 전개와 결말도 완벽했고 감동까지 선사했는데 무빙2는 또 어떨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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